아름다운세상/개그우먼 김미진과 쪽방 ''꽃 할머니''

  • 2006-12-21 14:34

개그우먼 김미진과 쪽방할머니 그리고 김용삼목사

 

"할머니 또 식사 안했지?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때 맞춰 식사 하셔야지 탈난다니까"

"아냐, 먹었어. 먹었어."

"밥이 그냥 그대로 있는데. 할머니 자꾸 식사 거르면 나 정말 화낸다. 거짓말 아니야"

끼니를 제 때 챙기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손녀는 으름장을 놓는다. 손녀의 협박(?)에도 할머니는 마냥 귀엽기만 한 손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따뜻하게 감싼다.

"춥지"라며 다정하게 묻는 할머니에게 손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는 검정 비닐봉지에 담긴 귤 하나를 주섬주섬 꺼내 까더니 할머니 입에 ''쏙'' 넣어준다. 참 곰살맞은 손녀다.

"우리 할머니가 입이 짧아요"라는 말로 할머니를 대신 소개하는 손녀는 개그우먼 김미진 씨(삼덕교회 출석)다. 이영애보다 더 이영애스럽게 강혜정보다 더 강혜정스러운 성대모사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개그우먼 김미진 씨는 할머니가 애지중지 아끼는 하나 밖에 없는 손녀다.

사실 할머니와 손녀는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는 아니다. 그러나 손녀와 할머니에게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그냥 ''가족''일 뿐이다.

김 씨와 할머니의 인연은 2년 전 모 방송국의 녹화현장에서 시작됐다. "서울역 쪽방에 사는 ''꽃 할머니''란 소개만 받고 찾아간 그 곳에서 할머니를 만났다"는 김 씨는 "화려한 고층건물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한쪽 블록 안으로 들어갔더니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면서 "두 평도 안되는 작은 방에서 외롭게 사시는 할머니를 본 순간 마음이 울컥 했다"고 첫 만남을 소개했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를 일찍 여윈 김 씨는 ''꽃 할머니''를 보자마자 바로 ''우리 할머니''란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친 손녀처럼 싹싹하고 정이 많은 김 씨가 그냥 이뻤다. 녹화를 끝낸 후 김 씨와 할머니는 거의 매일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나눴고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할머니를 찾았다.

"못해도 일주일에 서너번은 통화하는데 한번은 할머니한테 연락이 끊겼다"는 김 씨는 "통 연락이 안되는 할머니한테 삐치기도 한다"면서 애정을 과시한다.

하지만 ''목 마른 사람이 먼저 우물 판다''고 아쉬워 하는 쪽은 늘 손녀인 김 씨. "도저히 보고싶어서 안되겠더라고요. 할머니를 찾아갔죠. 근데 이게 웬일이에요. 전기가 합선돼 쪽방에 불이 난 거에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할머니의 전화요금이 미납돼 할머니도 전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꽉 스케줄 때문에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할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손녀''인 김 씨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크리스찬 봉사동아리를 통해 소모임을 만들고 자원봉사자들과 할머니의 쪽방을 완전히 새단장했다.

그날 이후 김 씨는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할머니와 전화통화를 거르지 않으려고 한다. 가족이 없는 할머니에게 ''가족''의 이름으로 함께하는 김 씨는 인터뷰 내내 "내가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그냥 배고플 때 같이 밥 먹고, 추울 때 같이 옷 사입는 것 뿐 과대포장은 하지 말아 줄 것"을 당부했다.

"할머니는 가족일 뿐 다른 무엇도 없다"면서. 김 씨의 가족도 모두 할머니를 ''미진의 할머니''로 인정하고 여러번 집으로 초대했지만 "미진이한테 짐스러울까봐 안된다"는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거절하고 있다.

한 때 김 씨는 할머니를 다른 곳으로 옮겨 드릴까도 생각했다. "할머니가 쪽방에서 혼자 지내시는게 편하지 않았다"는 김 씨는 "할머니가 쪽방 사람들을 의지하고 계셔서 쉽게 떠나지 못하신다"면서 "언젠가는 꼭 편한 곳으로 옮겨드리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미진이가 오는 날이 나는 가장 행복하고 기쁜 날"이라며 수줍게 손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꽃 할머니''의 올해 나이는 84세. 꽃을 유난히 좋아해서 ''꽃 할머니''라는 애칭을 얻게된 할머니는 젊었을 적 대사관에서 근무할 만큼 ''신여성''이었지만 피난 시절 남편과의 만남이 어긋나면서 평생을 혼자 지냈다.

김 씨는 할머니의 가족을 찾으려고 등ㆍ초본을 떼보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수소문 해보기도 했지만주민등록이 말소됐던 할머니의 가족을 찾기란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있었단다. 할머니를 바라보는 김 씨의 눈빛이 더욱 애틋하고 안타까운 이유다.

하지만 할머니는 외롭지 않다. "미진이를 위해 기도하고 미진이가 나를 위해 기도해주니까 괜찮다"는 할머니. "할머니와 단 둘이 일본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는 손녀가 서로를 끔찍히도 위하는 마음때문인지 쪽방이 훈훈하게 달아올랐다.

"우리 미진이 목 안프게 방송 잘 하라고 기도해줘. 항상 차 조심하게"라며 기도를 부탁하는 ''꽃 할머니''는 "우리 미진이 보고 싶어도 참아야지"하며 방송일이 바빠 자주 만나지 못하는 손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손녀도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없이 눈을 맞춘다.

할머니와 손녀가 초록색과 빨간색으로 똑같이 맞춰 입은 커플코트가 마치 쪽방촌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환히 밝히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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