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 2008-03-11 19:28

박에스더, 한국여성이 한국여성을 진료하는 시대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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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남성 위주의 봉건주의 세상에서 용기있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사회의 빛이 된 한국교회 초기 여성 리더들이 있다. 그 중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 ''박 에스더''를 소개한다.

한국여성이 한국여성 진료하는 시대 열다

박 에스더는 1876년 서울 정동의 한 가난하고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선교사의 손에 이끌려 이화학당을 다니게 됐고,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그녀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영어에 소질이 있었던 박에스더는 이대 동대문병원의 전신인 한국최초의 여성전용병원 ''보구여관''에서 미국인 선교사이자 여의사인 ''셔우드''의 통역을 돕는 것으로 그녀와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 풍습상 ''남편 이외의 남자에게 몸을 보일 수 없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하던 당시 한국여성들 때문에 보구여관으로 급파됐던 ''셔우드''. 하지만 한국여성들은 이 푸른 눈의 여의사에게도 몸을 완전히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국여성은 한국여성이 진료해야만하는 어쩔수 없는 상황. 이의 첫 스타트를 끊은 사람이 바로 박에스더였다.

셔우드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을 하고 한국 최초의 여성의사가 된 24살의 박에스더.

그녀는 1896년 10월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후의 존스홉킨스 대학)에 입학해 1900년 6월 의학박사 학위를 받게된다.

박에스더는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여성환자들을 돌보는 데 몸을 아끼지 않았고 이같은 헌신적 삶은 안타깝게도 그녀를 34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도록 만들었다. 과로로인해 얻은 폐결핵이 최종 병명이었다.

이종용(이화여고 박물관장)은 "기록에 보면 하루 수백명의 환자를 진료했고 사례도 한 푼 받지 않았다"며 그녀의 헌신적 삶에 대해 언급 했다.

복음과 벽안 선교사의 헌신은 박에스더의 인생을 변화시켰고 그녀는 육신과 영혼의 질병에 찌들어있던 이 땅의 여성들에게 희망의 빛을 선사한 선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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