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정교회
우리가 매일 읽고 있는 성경가운데 신약성경은 원래 희랍어(Greek)로 기록되었다. 그래서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신학교에선 어김없이 희랍어가 필수과목이다. 신학생이라면 적어도 성경을 원어로 읽어야 하기 때문. 교회당내 성구 가운데 대개 알파(α)와 오메가(Ω)란 희랍어 알파벳이 조각된 렉턴이나 풀핏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주님께서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랍어는 우리 신앙생활과 근접한 관계에 있지만 사실 희랍인이나 희랍정교회와의 교류는 흔치 않다.
팔레스타인에서 비롯된 소수 종교집단이던 기독교가 사도 바울 등을 통해 유럽으로 전래되고 마침내 로마제국의 공식적인 종교로 공인 받으면서 기독교는 로마를 업고 세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어거스틴의 시대에 로마제국은 동-서로 분리되었다가 476년 서로마는 게르만 민족에게 멸망을 당했고 동로마는 후일 1453년 오스만 트루크에게 멸망할 때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로마문명을 배경으로 하는 서방교회는 로마 캐톨릭으로 불리고 희랍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동방교회(Eastern Church)는 희랍, 혹은 그리스 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라고 불렸다. 동방정교회의 전례 문서 혹은 교회법 문서에서 사용되는 공식적인 명칭은 ''''정통 캐톨릭 교회(Orthodox Catholic Church)''''이다.동방 정교회를 희랍정교회라고도 불리는 이유는 그 신학사상과 교리가 희랍어로 되어있고, 희랍철학적인 요소(신플라톤주의, 신비주의, 수도원주의)가 강하기 때문이다.
북쪽의 게르만 민족들은 주로 서로마로 쳐들어가서 라틴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게르만 민족이 다스리는 시대를 열었다. 이때부터 북유럽의 모든 지역이 그 관할에 들어왔기 때문에 슬라브족 중심의 러시아 지역을 제외한 유럽은 대부분 로마 캐톨릭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중세기 기독교의 주도권은 로마 캐톨릭이 잡고 있었다. 회교도들에게 동로마가 멸망한 후 희랍 정교회는 러시아의 모스크바로 옮겨갔다. 그래서 러시아는 오늘날까지 희랍 정교회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동방 정교회는 캐톨릭 교회 보다 사도시대의 초대교회 전통을 더 진지하게 보존하고 실행하며 산다는 의미에서 ''정통교회''라고 불릴 수도 있겠지만 너무 국가권력과 결탁하여 배타적이란 비판도 받고 있다. 예컨대 그리스에서는 정교회 교인등록증이 없거나 세례증서가 없으면 공무원이나 교사가 될 수 도 없고 시민생활에도 많은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희랍인들도 미국에 이민을 시작, 금년 ''LA 희랍인 이민 100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국인의 하와이 이민보다 20여년이 더 늦은 셈이다. 그들은 미국에서 어떤 모양으로 이민 커뮤니티를 이루며 어떻게 신앙 공동체를 형성해 가고 있을까?LA 타임스는 지난 5월 27일자 캘리포니아 섹션에서 희랍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는 뉴스를 톱기사로 다루면서 LA에 사는 희랍 이민자들을 소개했다.
지난 메모리얼 데이 연휴에는 노스릿지에 있는 유명한 세인트 니콜라스 희랍정교회(St. Nicholas Greek Orthodox Church)에서 제35회 연례 밸리 그릭 페스티벌이 열렸다. 참가인원만도 무려 5만여명. 세인트 니콜라스 교회는 남가주에 있는 20여개의 희랍정교회 가운데 대표적인 교회. 샌퍼난도 밸리 발보아와 플러머 스트릿에 자리 잡고 있다.
2006년 US 연방 센서스에 따르면 그릭 아메리칸의 인구는 약 1백40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미국 내 한인 인구를 약 2백에서 2백 50만으로 추산할 경우 한인이민자들보다는 숫자가 적은 편이다. 그 가운데 남가주에 거주하는 희랍 이민자는 약 15만 명. 뉴욕 다음으로 희랍인최대 밀집지역이다. 시카고의 경우는 희랍인들만 모여 사는 밀집지역이 있지만 LA는 산발적으로 흩어져 살고 있다. 희랍인들의 이민이 독일, 아일랜드, 영국 이민자들과 비교가 안될 만큼 숫자가 적은 이유는 1924년 발효된 이민 쿼타에서 크게 제한을 받았기 때문. 당시 미국에선 남부유럽과 동부 유럽 이민자들에 대한 이민 반대 여론이 고조되어서 1900년에서 1917년 사이 34만 명에 달하던 희랍이민자 수가 1925년부터 1945년 사이엔 2만 1천명으로 대폭 감소되었다.
레스토랑
희랍 이민자들 역시 전쟁, 정치적 혼란, 가난 등을 피해서 새로운 꿈을 이루기 위해 신천지를 찾았다. 이들도 대부분 영어가 불편하여 접시닦이, 철도 노동자등으로 초기 이민생활을 거치다가 후에는 식당이나 카페를 경영하면서 안정을 찾아가는 패턴. 그러나 한인이민자들과 아주 흡사한 것은 바로 이들 희랍인들도 가는 곳마다 교회당을 세운다는 점이다. 희랍 초기 이민자들이 LA 다운타운에 정착했을 때 이들은 현재는 가멘트 디스트릭으로 변한 샌 줄리안 스트릿에 성모 마리아 교회를 세웠다. 1912년의 일이다. 지금은 없어지고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이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이민생활을 개척해 나갔다. 교회가 이들 신앙과 문화의 중심이 된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정교회 예배 순서대로 예배를 드리고 희랍어 랭귀지 스쿨, 비잔틴 음악과 비잔틴 전통댄스, 부활절 피크닉, 커뮤니티 페스티벌 등이 모두 교회에서 열린다. 이들도 이민 2세들이 어른이 되면서 타인종과의 결혼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희랍 언어와 문화가 점점 퇴색하고 있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희랍 정교회들은 이민 2세들을 위해 희랍어로 드리는 예배를 없애고 영어로 드리는 예배를 확대하고 있다. 그래서 젊은 층을 교회로 불러들이겠다는 것이다. 그 대신 교회에서 희랍어 주말 학교를 열고 있다. UCLA에 재학 중인 한 희랍계 학생은 자신의 ''뿌리''를 보존하기 위해 모국에서 열리는 2주간의 스튜던트 캠프에 참가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섬머 캠프의 일환으로 열리는 이같은 캠프를 통해 이곳에서 태어난 희랍인 후손들은 모국을 방문하여 희랍의 문화, 언어와 역사를 익히고 돌아오고 있다.
우리 한인커뮤니티, 그리고 한인교회들과 아주 흡사한 희랍 커뮤니티와 희랍 정교회, LA는 이처럼 다양한 소수인종들이 다양한 문화를 자랑하며 공존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타인종의 종교와 신앙내용도 상호 존중해 주는 넓은 가슴, 다양성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칼라 블라인드''''가 요구되는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