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통해 일반에 공개되는 ''시내사본''이란 무엇인가?

  • 2008-08-01 11:26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약성서 필사본 일부가 이번 달 24일부터 인터넷을 통해 최초로 공개되어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국의 대영도서관과 독일의 라이프치히 대학은 웹사이트 (www.codex-sinaiticus.net)를 통해 4세기 그리스어로 쓰여진 ''''코덱스 시나이티쿠스(Codex Sinaiticus),'''' 한국어로는 ''시내사본''이라 알려진 필사본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라고 지난 22일 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신약의 마가복음과 구약의 시편은 24일 인터넷에 게재되었지만 온라인에 전체 원고가 공개되는 기간은 1년이 걸릴 예정. 시내사본 번역본은 오랫동안 여러 곳에서 이용할 수 있었으나 현재까지는 주로 학문적 연구를 위해서만 공개되어 오다가 이를 온라인 공개본으로 디지털 이미지화하여 누구나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웹사이트의 운영이 시작되면 영어와 독일어로 번역돼 링크된 성서 텍스트가 담긴 페이지별로 원본을 이미지화한 내용을 볼 수 있다. 검색 기능도 제공될 예정이다.시내사본에는 신약성서 뿐 아니라 구약성서 일부도 포함됐다. 여기엔 경전에서 제외된 구약외경 14권도 포함되어 있고 신약외경인 ''바나바 서신서''와 ''허마 목자서''도 포함되어 있다.

대영도서관은 3년 전부터 1600년 전 제작된 이 필사본의 디지털 작업에 착수했다. 4개 국가가 필사본을 페이지 별로 나눠 이번 작업에 참여했다. 영국, 러시아, 독일, 이집트에서 전체 필사본을 인터넷에 올리기 위한 디지털 사진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코덱스 시나이티쿠스''''는 ''''코덱스 바티카누스(Codex Vaticanus, 바티칸 사본)''''와 함께 현존 하는 최고의 성경으로 불린다. 구약성서의 약 절반 정도가 빠져 있지만 4세기 신약성서의 내용이 모두 담겨 있어 그 가치는 말로 표현이 불가능한 ''보물중의 보물''로 인정받고 있다. 대영도서관의 경우 처음 이 시내사본을 접하는 사람은 반드시 무릎을 꿇도록 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이 시내사본은 독일 학자인 티쉔돌프(Constatin von Tischendorf, 1815-1874)가 발견한 것이다. 그는 29세의 나이로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신약학을 전공한 뒤 1844년 색소니의 프래데릭 아우구스투스 왕의 후원으로 여행을 하다가 시내 산의 성 캐더린(St. Catherine) 수도원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난로에 불을 피우기 위해 모아 둔, 종이로 꽉 찬 쓰레기통을 발견했고 그 순간이 바로 양피지 43장에 기록된 ''칠십인역''(시내사본 구약)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영국에는 알렉산더 사본을 소유하고 있었고 이태리는 바티칸 사본을 갖고 있을 때였다. 성서 원본을 갖고 있지 못하던 독일은 이를 ''국가적 영광''으로 크게 반겼다.

그 후 티쉔돌프가 두 번째로 그 수도원을 방문하게 되었으나 이미 수도원측은 냉담한 반응을 보여 더 이상의 원본 찾기에 실패했다. 그 후 러시아 황제의 도움을 받아 세 번째 세인트 캐서린 수도원을 여행하게 된 티쉔돌프는 347쪽에 달하는 방대한 필사본을 발견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미 발견된 43쪽의 필사체와 동일했다. 이 사본은 러시아 알렉산더 2세에게 헌정되어 러시아가 소장하고 있다가 경제사정이 나빠진 러시아가 1933년 10만 파운드를 받고 영국에 팔아버려 영국이 소장하게 되었다.

이 시내사본은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대제가 당시 가이사랴의 성서학자 유세비우스를 시켜 그리스어 성경 50권을 제작, 로마 제국 내 큰 교회들에 보급하라는 명령을 받고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50권 중 한권이 이슬람의 지배를 피해 수도원에 들어온 피난민에 의해 수도원에 흘러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19세기 초 이 시내사본이 발견될 때 사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쓰인 성경은 마태복음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내사본에는 마가복음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기사, 즉 16장 9-20절까지의 기록이 빠져있다. 따라서 시내사본은 19세기 말 복음서의 뜨거운 논쟁의 씨앗을 제공했고 결국 마가복음이 4복음서 가운데 최초로 기록되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시내사본은 삭제된 것이 너무 많아 수도원에서 불쏘시개로 사용하려던 것이라며 ''변개된 성경''을 낳게 한 ''무가치한 사본들''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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