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서재필 박사를 추모하며

  • 2009-01-14 19:34

김해종(전 UMC 감독, 현 백인교회 알파인 UMC 담임 목사)

1951년 1월 4일은 ''1.4 후퇴''
김해종 목사

 

로 기억 하는 날이다. 이 날은 내 개인에게 있어서도 잊지 못할 날이었다. 6.25 전쟁 초기에 아버님을 잃고 16세 소년 가장이 된 본인이 리아까를 끌고 어름 위로 한강을 건너 피난 가던 날이다. 홀로되신 어머님과 이제 겨우 9살 된 동생은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어 따라오고 두 여동생들은 짐 위에서 삐거덕 거리는 어름의 금가는 소리를 들으며 불안하게 앉아 있었다. 갈 곳도, 있을 곳도 없는데 정처 없이 나선 피난길이었다.

같은 날 미국에서는 한국 ''이민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애국지사 서재필 박사가 사경을 헤매고 있었으니 그 다음 날, 1951년 1월 5일, 민족상쟁의 전운 속에 휘말려 있는 조국을 안타까워하시던 그는 필라델피아 근교에 있는 노리스타운 몽고메리 병원에서 87세를 일기로 외롭게 생을 마쳤던 것이다.

후일에 한국 이민자들이 수백만 명이 미국에 들어오고 바로 그 병원에서 한국 인턴들이 일하며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여러 한국인 의사들이 그를 추모하며 서재필 재단을 만들어 많은 자선사업을 할 날이 오리라고 그때 어찌 상상을 할 수 있었으랴.

서재필 박사는 한국인으로 첫 이민자였고 첫 의사가 되었고 1890년에 첫 시민권을 취득한 한국이민의 선구자이다. 그는 미국에 돈을 벌러 온 것도 아니요, 소위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온 것도 아니었다.

우리 나라의 앞날이 풍전등화 같았던 이조 말기에 애국심에 불타던 청년 서재필은 1884년에 20세의 젊은 나이에 김옥균 등과 함께 ''갑신정변''이란 개혁운동을 주도 하다 실패하여 역적으로 몰려 일본으로 망명을 하게 되었다.

역적에 대한 가혹한 나라의 벌은 그의 삼족을 멸하였으니 사약을 받은 그의 부모는 물론 그의 젊은 아내와 그의 형과 동생도 사형을 받았고 두 살된 그의 유일한 아들은 역적의 아들 이라고 돌봐 주는 사람 없이 길을 헤매다 굶어 죽었다고 한다.

일본으로 망명간 그는 마침 한국으로 들어오려고 준비 중인 아펜젤러 선교사를 만나 1885년 4월에 미국으로 망명길을 떠나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전전긍긍 고생 끝에 홀랜백이라는 석탄 재벌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동부로 와 공부를 하게 되었고 18세 때에 과거에 합격 했던 명철한 그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였고 미국에서는 한국인 최초의 의사가 되었다.

1895년 11월 조선 정부 내부에 세력의 변화가 찾아 와 그를 불렀을 때 조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오자 지체 하지 않고 귀국하여 4년 동안 조국의 개혁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아니하였다.

마침 정동교회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던 아펜젤러 선교사를 다시 만나 감리교인이 되었고 배재학당에서 가르치며 그가 미국에서 배운 새로운 지식과 자유와 민주주의 사상을 가지고 젊은이들을 가르치며 깨우치고 그들에게 새로운 비젼을 주었으니 후일에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 될 이승만 박사도 그에게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짧은 사년 동안에 서재필 박사는 ''독립신문''을 한글로 발간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함은 물론 한글 선양운동을 시작했고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협회를 조직하는 등 미래 조국을 위한 초석을 놓았다. 불가불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 그는 첫 한국인으로서 의학계에서 눈부신 활동을 하였고 3.1독립 운동 때는 미국에서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여러가지로 활약하였다.그런 세재필 박사에게 8.15 해방은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었겠는가? 1947년 7월 미군정 최고 고문관으로 귀국하여 혼란기 한국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했으니 그 때 나이는 이미 83세였다.

서재필 박사는 역적의 누명을 씌우고 삼족을 멸하는 엄청난 고통을 준 조국을 배신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사랑 하였으니 그는 최초의 미국 이민자로서 나라 사랑의 최고의 본을 보여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요 우리들의 ''롤 모델''이다. 그의 기일인 1월 5일을 맞아 그의 후배 이민자의 한 사람으로서 훌륭한 사표를 보여준 그를 추모 하여 이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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