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1997년 3월 13일에 도착한 독일 본(Bonn)은 독일이 통일되기까지 서독의 수도였다. 나는 본(Bonn)대학에서 1978년부터 1984년까지 만 6년 동안 머물면서 구약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한지 13년 만에 본을 다시 찾은 우리는, 스승 군네벡 교수님이 1990년에 68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다음, 홀로 살고 계신 사모님을 오랜만에 찾아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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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3월 16일 주일 예배에 참석하기 위하여 누가교회(Lukaskirche)를 방문하였다. 이 교회는 우리가 본에 살 동안에 한인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던 교회였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니 60여명의 교인들이 이미 와서 앉아 있었다. 이날은 견신례교육을 마친 학생들이 부모님들과 함께 와서 예배를 드리는 날이어서 평소보다 많이 왔다. 평소에는 주일 예배에 7-8명밖에 참석하지 않는단다. 누가교회에 등록된 교인은 3,000여명이지만 주일예배 참석자는 10명 미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0.3%). 이것이 오늘날 독일 교회의 모습이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독일 교인은 전체 교인의 2-3%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한다.
누가교회 담임목사인 토마스 목사가 간단한 설교를 했다. 참석한 교인들이나 청소년들은 설교에 별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았다. 예배가 끝나고 우리는 친교실에 모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교인들은 가만히 앉아있고, 설교한 토마스 목사가 손수 다과와 차를 교인들에게 가져다가 대접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나온 대부분의 교인들은 자녀들의 견신례교육 졸업예배 때문에 오랜만에 참석한 사람들이어서 손님처럼 앉아 있었던 것이다. 한국 같았으면 오랜만에 나온 교인이라 할지라도, 목사님이 손수 다과를 나르는 모습을 보면 목사님을 도와 함께 다과를 나를 텐데, 독일 교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목사가 너무 외로워 보였다. 또 목사나 교인들 그 누구도 우리 부부에게 관심을 가지고 인사하지 않았다. 우리가 본에 머무는 동안 이 누가교회에 나와서 6년 동안 예배를 드렸는데도 말이다. 한편으론 섭섭하기도 했다.
누가교회에서의 예배가 끝나고 근처에 있는 가톨릭의 성 요셉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약 300여명의 교인들이 예배를 드렸다. 이 교회 역시 어린이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여기서도 견신례 졸업예배를 드리는 모양이었다. 예배 후에는 설교한 벡커 신부가 친절하게 우리 부부를 사제관으로 안내하고 그가 쓴 책도 주었다. 교인들도 친절하게 인사를 했다. 누가교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성 요셉교회에 속한 교인은 약 5000명 정도 되는데, 벡커 신부 혼자서 일을 맡아서 한다. 매일 매일이 주일처럼 분주하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린이들도 쓰다듬어주는 등 교인들과도 가식 없는 친절한 인사를 나누었다. 교회에 생기가 돌았다. 이에 비하면 누가교회는 아주 차가운 교회라는 인상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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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여명 교인 가운데 주일 예배 참석자는 7-8명에 불과할 만큼 독일교회가 쇠퇴한 원인은 무엇인가? 독일교회는 오래전부터 교인들의 탈퇴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교인숫자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교인의 감소는 개신교회가 더 심하지만, 가톨릭교회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1993년에 독일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마이쓰너(Meissner)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독일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불모의 황야와 같다. 우리 사회에는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1993. 1월 3일자 Sueddeutsche Zeitung). 마이쓰너 추기경의 말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방문했던 성 요셉교회의 주보에는 그 원인이, 독일 교인들이 의무적으로 내는 교회세금(독일교인들은 자기가 교인이라고 주민등록을 하면 매월 정기적으로 일정액의 교회세금이 자동적으로 월급에서 빠져나가 독일교회의 재정으로 들어가게 된다)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교회세금이 주된 원인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교회세금도 한 원인이 될는지 모르지만,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사실은 이번 유럽 교회성지 순방을 하는 목적이 바로 유럽교회의 쇠퇴의 근본 원인을 찾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이 정도로 하고,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하여 다시 말하게 될 기회들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