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기지촌' 여성 상담소 두레방,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

  • 2024-04-23 18:10

두레방, 인권운동가 故문혜림 여사가 1986년 설립
기지촌·이주 여성 위한 상담소이자 쉼터 역할
의정부시 새뜰마을 사업 이유로 건물 이전 요구
의정부시청 앞 목요시위…"두레방 이전 반대" 목소리
"기지촌 여성들의 아픔이 있는 곳…빼벌마을에 있어야"


[앵커]
시설이 낙후된 지역을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오랜 기간 어려운 이들을 지원해 온 기독교 관련 단체들이 주변으로 내몰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경기도 의정부 미군 기지촌 여성들을 상담하며 그들의 상처 회복에 힘써온 두레방이 최근 의정부시의 개발계획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한혜인 기자가 보도합니다.

경기 의정부시 빼벌마을에 위치한 여성 상담소 '두레방'. 정선택 기자경기 의정부시 빼벌마을에 위치한 여성 상담소 '두레방'. 정선택 기자
[기자]
경기 의정부시 빼벌마을 골목길. 미군 부대의 후문에서부터 골목을 따라 기지촌이 형성돼있습니다.

'클럽'으로 표기된 영어 간판들이 군데군데 눈에 띕니다.

마을 초입에는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상담소 두레방이 지금도 상담활동을 합니다.

[인터뷰] 김은진 원장 / 두레방
"미군들을 상대로 하는 소위 말하는 기지촌 여성, 그때 당시의 양공주라고 불리던 분이세요. 그분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죠."

한국전쟁 이후 한국교회는 사회 낮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 그들의 삶을 보듬는 활동을 펼쳤습니다.
 
낮은 곳을 향한 교회의 발걸음은 이곳 기지촌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두레방은 미국인이면서 고(故) 한국기독교장로회 문동환 목사의 사모였던 고(故) 문혜림 여사가 성매매에 노출된 기지촌 여성의 회복을 돕기 위해 지난 1986년 설립했습니다.

지금까지 39년째 빼벌마을에서 기지촌 여성과 이주 여성 등을 위한 상담소이자 쉼터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어느새 70, 80대가 된 기지촌 여성들 20여 명은 지금도 이곳 두레방을 찾아옵니다.

50여 년 전, 기지촌에서 20대를 보낸 김 할머니에게 두레방은 마음 속 상처와 응어리를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인터뷰] 김00 / 두레방 내담자
"도망갈 수도 없고 도망가다 잡히면 빚 얹어 가지고 또 다른 클럽으로 넘기고, 여기 와서 처음 봤어 외국 사람이라는 거를 그래서 얼마나 무서웠겠어 어린 나이에…"

지난 1월 두레방은 건물 소유주인 의정부시로부터 공간을 비워달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생활여건이 낙후한 지역을 개조하는 새뜰마을 사업을 추진하면서 두레방이 있는 자리에 다른 시설을 짓겠다는 겁니다.

두레방 직원들과 기지촌 여성들이 18일 의정부시청 앞에 나와 이전 반대 목요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시위는 오는 25일에도 이어질 예정이다. 정선택 기자두레방 직원들과 기지촌 여성들이 18일 의정부시청 앞에 나와 이전 반대 목요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시위는 오는 25일에도 이어질 예정이다. 정선택 기자
두레방 직원들과 기지촌 여성들은 목요일마다 의정부시청 앞에 나와 이전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녹취] 두레방 존치를 위한 목요시위 참석자, 두레방 내담자
"두레방이 빼벌마을에서 없어지는 것은 저희들의 보금자리를 빼앗기는 것과 같습니다."

[인터뷰] 김00 / 두레방 내담자
"이거는 그냥 계속 유지시켜 놔야 돼. 왜냐면 여기는 너무 슬픈 우리의 아픔이 있는 곳이거든 이 자리가…"

김은진 원장은 "두레방은 한국전쟁이 남긴 아픈 역사를 간직한 상징적 장소"라고 말했습니다.

두레방이 들어서기 전 이곳은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 검사와 관리를 맡았던 보건소 건물이었습니다.

김 원장은 부끄러운 역사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후대에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시에 촉구했습니다.

[인터뷰] 김은진 원장 / 두레방
"이런 역사성이나 이런 것들을 무시하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언니들이 진짜 갈 곳이 없어요. (여전히 두레방에) 많이 오시는데 그런 부분들을 간과하시지 않으시고 저희 두레방이 이곳에 계속 있을 수 있도록…"

두레방에 따르면, 작년에만 140여 명의 여성이 두레방에서 상담과 심리 지원을 받았습니다.

의정부시청 관계자는 두레방 존폐에 대해 명확하게 결정된 건 없다며 다음달 시장과 두레방 관계자들이 만나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CBS 뉴스 한혜인입니다.

(영상기자 정선택, 영상편집 서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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