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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D:1}이화여대를 설립하는 등 선교초기 여성교육과 의료선교에 헌신했던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가 서거한 지 8일로 꼭 100년이 됐다.
100주기를 맞아 스크랜턴 선교사 후손들이 처음으로 방한했다. 그리고 8일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의 5대 6대 손녀 손자들인 후손들은 서울 양화진에 묻힌 고조 할머니의 묘소를 찾아 헌화했다. 스크랜턴 선교사가 서거한 지 꼭 100년 만의 일이다.
스크랜턴 선교사 후손들은 아펜젤러나 언더우드 선교사 후손과 달리 그동안 연락이 단절돼, 한번도 한국을 찾지 못했다.
스크랜턴에 의해 세워진 아현, 상동, 동대문 감리교회와 이화여대, 이화여고가 스크랜턴 서거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어렵게 후손들을 찾아 이번에 처음으로 방한한 것이다.
스크랜턴 가족을 개인적으로 연구해온 엘렌 스완슨(미국 커네티컷주 거주)을 우연히 알게됐고, 그녀를 통해 미국과 카나다, 영국, 프랑스 등 곳곳에 흩어져있던 후손들을 찾게 된 것이다.
스크랜턴 후손들은 묘소를 찾은 내내 벅찬 감동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샐리 게일(스크랜턴 선교사 5대 손녀, 캐나다 토론토 거주)은 "고조 할머니의 선교사역이 이렇게 많은 곳에서 꽃을 피웠고, 현재까지 많은 증거들이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놀라웠다"며 "추모예배를 드리고 묘소엘 찾으니 너무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스크랜턴은 미감리회 해외여선교회 선교사로, 1885년 6월 우리나라에 들어와 가난한 여성과 노약자, 소외계층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복음전도에 힘썼다.
아들 스크랜턴 선교사와 함께 의료선교에 힘썼고 이화학당을 세우는 등 우리나라 근대 여성교육의 어머니 역할을 감당했다.
또 상동, 아현, 동대문 감리교회를 세우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현감리교회 조경열 목사는 "스크랜턴은 다른 선교사들과 달리 가난한 백성들과 천대받던 여성들을 위해 헌신한 분"이라며 "우리 교회를 설립한 분이어서가 아니라, 그분의 사역이 너무 놀라워서라도 더 스크랜턴을 기억하고 돌아보게 된다"고 강조했다.
스크랜턴은 2달의 시차가 있었을 뿐, 아펜젤러와 같이 한국 선교의 꿈을 갖고 1885년 일본에 머물렀던 인물이다. 서양 여성에 대한 당시 조선의 편견 때문에 일본에 조금 더 체류하면서 늦게 들어왔을 뿐, 최초의 선교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펜젤러나 언더우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조명받아왔다.
특히 엘리트 위주의 선교를 한 아펜젤러, 언더우드와 달리스크랜턴은 버려진 민중들과 함께 했다는 점에서 그녀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