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담 허물고 평화로"… 광주NCC, 설 맞이 장기수 위로예배 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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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앞두고 분단의 비극을 온몸으로 관통해온 이들을 위로하며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참석자들이 "통일"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참석자들이 "통일"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광주기독교교회협의회(광주NCC, 회장 허정강 목사)는 10일 오전 광주YWCA 소강당에서 '설 맞이 비전향 장기수 위로예배'를 개최했다. 광주CBS(조기선 대표)와 YMCA(나일도 이사장), YWCA(김순자 회장) 등 지역 기독단체들과 기장 광주노회, 예장 통합 전남·광주·광주동노회가 연합해 마련한 이 예배는 이념의 벽에 가로막혀 고립된 이들을 보듬어온 광주 지역 교계의 30년 넘은 전통이다.

광주벧엘교회 리종빈 위임목사가 '평화에 관한 일을 알라'는 주제로 설교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광주벧엘교회 리종빈 위임목사가 '평화에 관한 일을 알라'는 주제로 설교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평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구는 것"… 역사적 맥락 짚은 설교
1부 예배에서 설교자로 나선 리종빈 목사(광주벧엘교회)는 '평화에 관한 일을 알라'는 주제로 평화의 신학적, 역사적 의미를 짚었다. 리 목사는 평화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인 화해와 나눔의 과정임을 강조하며, "분단의 상처를 짊어진 이들을 돌보는 것이 곧 그리스도인의 '화목하게 하는 직책'이다"고 역설했다.

◆'전쟁이 남긴 산 증인', 그들의 시린 고백과 신앙
이날 위로회에는 김찬영, 서경원, 이정준, 이광근 씨 등 5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참석해 저마다의 사연을 전했다. '비전향 장기수'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꺾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십 년간 옥고를 치른 이들을 뜻하지만, 교계가 만난 이들의 내면에는 분단의 역사적 상흔과 더불어 깊은 신앙의 고백이 자리하고 있었다.

준비한 선물을 장기수 어르신들께 전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준비한 선물을 장기수 어르신들께 전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평안북도 출신으로 한국전쟁 당시 남하했다가 수십 년의 수감 생활을 견뎌낸 김찬영(광주평강교회 원로목사) 씨는 고난의 세월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온 소회와 함께 고향과 남겨진 가족들을 향한 그리움을 전했다.

또한 농민운동가 출신인 서경원(전 국회의원) 씨와 이정준(광주남문교회 장로) 씨 등은 냉전이라는 거대 서사 속에서 개인의 삶이 통째로 매몰된 '분단의 산 증인'들이다. 이들에게 명절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북녘 고향에 대한 시린 향수를 실감하게 하는 가장 아픈 계절이다. 장기수들은 "경색된 남북 관계 속에서 우리가 겪은 아픔이 후대에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잊지 않고 찾아와 손을 잡아주는 기독교인들의 사랑에 큰 위로를 받는다"고 전했다.

◆지적 중립성을 넘어선 인도주의적 보듬기
남녘현대사연구소 박동기 소장은 참석자들을 소개하며 "이분들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인물들"이라며, 이들을 이념의 틀이 아닌 인권과 인도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봐 줄 것을 당부했다.

광주NCC 회장 허정강 목사가 장기수 어르신 초대의 말을 전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광주NCC 회장 허정강 목사가 장기수 어르신 초대의 말을 전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광주NCC는 예배 후 오찬을 나누며 장기수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했다. 광주NCC 관계자는 "비전향 장기수 문제는 정치적 사안이기 이전에 깨어진 관계를 회복해야 할 신앙적 과제"라며, "앞으로도 이 땅의 진정한 주권이 회복되고 평화의 길이 열리는 그날까지 예언자적 목소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예배는 참석자 전원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며 마무리됐다. DMZ의 철조망처럼 단단히 굳어버린 이념의 장벽도 하나님의 평화 앞에서는 허물어질 수 있다는 간절한 기도가 소강당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