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3.1절이 되면 일본 식민통치의 아픔이 뼈저리게 되살아나는 이들이 많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 대표적인 피해자들이다.
지난 세월의 아픔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고 입양한 아들을 목회자로 길러낸 길원옥 할머니를 만나봤다.
3.1절이면 더욱 무너지는 가슴매주 수요일이면 일본 대사관 앞에서 사죄와 배상을 외쳐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있다.
올해 83살의 길원옥 할머니도 고령의 몸을 이끌고 늘 자리를 지켜왔다.
''이번엔 좋은 소식이 있을까...'' 늘 기대를 품어보지만, 굳게 닫힌 일본정부의 입은 900번이 넘는 외침에도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때문에 3.1절이면 할머니의 가슴은 더욱 무너져 내린다.
"매년 심일절은 돌아왔죠. 삼일절이 되면 일본 사람들이 한 마디라도 해야하는데 그게 없나..기대를 하게되고, 그렇다고 우리정부가 그에 대항해 한 마디를 하길 하나..그러니 늘 답답하지요"
과거의 끔직했떤 기억은 지금도 생생해13살 꽃다운 어린나이에 끌려가 모진 삶을 살아내야 했던 길 할머니. 과거의 괴로운 기억은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게 할머니를 괴롭힌다.
"저는 생리도 하기 전에 갔거든요. 13살에 갔으니깐...어느 날 생리를 하는데, 난 그 사람들이 날 건드려서 속이 잘못된 줄만 알았지요. 맞기도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구둣 발로 얻어 맞는 것은 보통이고 한 번은 칼 등으로 머리를 맞아 온 몸이 피 범벅이 된 적도 있고...그 고생하고 참혹한 말을 어디다 다 합니까?"
입양한 아들, 목회자로 길러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이를 신앙의 힘으로 이겨낸 길 할머니는 입양한 아들을 목회자로까지 길러냈다.
일본의 만행으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됐지만, 가슴으로 자녀를 낳아 훌륭하게 길러낸 것이다.
"어느 날 아기를 받으러 갔는데, 그 산모가 아기를 버렸지요. 그래서 기르게 됐어요. 처음에는 저보다 더 좋은 가정, 양 부모가 다 있는 가정으로 보내고 싶었지만 결국 아들이 52세가 될때까지 기르게 됐네요."
이 같은 비극이 또다시 일어나서는 켤코 안된다고 강조하는 길 할머니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는 역할을 감당하겠다고 거듭 다짐한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수요시위는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든 아무데나 오라는데 다 갈겁니다. 왜나면...내가 너무 아팠으니깐..후손들이 또 이런 기막힌 꼴을 당하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