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일본 기독교 순교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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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선교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선교하기도 어렵고 선교의 결실 맺기도 어려운 일본 땅이지만 일본에는 순교자의 피와 정신이 어려 있는 순교 유적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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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자카 언덕에 건립된 26성인 기념비

순교의 땅 일본 나가사키. 나가시키 역에 내려서 왼편 위로 보이는 니시자카 언덕. 이 언덕에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기독교 금지령을 내리면서 1597년 26명의 크리스천(키리스탄)들을 처형한 것을 기념하는 26성인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들 크리스천들은 1597년 귀가 잘린 채 교토를 출발, 한달가량 8백킬로미터를 끌려와 이곳 니시자카에서 십자가에 달려 창에 찔린 채 순교했다. 26명 가운데는 14,5세 가량의 소년 3명도 포함돼 있다. 26명이 최초로 순교한 이후 6백명 이상의 크리스천이 이곳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거룩한 산'' 또는 ''순교의 언덕''이라 불리며 나가사키에서 최초의 공원이 됐다.

후나고시씨가 제작한 26 성인 기념비는 무상의 기쁨을 안고 하늘에 불려가려고 하는 26명의 순교의 순간을 잘 나타낸 것으로, 후나고시씨는 이 작품으로 제5회 타카무라상을 수상했다.

''시마바라 농민의 난''

크리스천의 수가 많았던 시마바라와 아마쿠사의 농민들은 지나 친 기독교 탄압 뿐 아니라 수 년 동안 계속된 흉작과 무거운 조세로 인해 불만이 극에 달하게 됐고 1637년 10월 25일 크리스천 농민들의 봉기로 ''시마바라의 난''이 시작됐다. 대규모 농민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토쿠가와 막부는 12만명의 군사를 동원해 3만 7천여 명의 크리스천들을 살해했다고 전해진다.

오무라 호코바루 처형장

시마바라의 난 이후 크리스천들이 대부분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시마바라의 난을 이끌었던 소년 장수 ''아마쿠사시로''가 환생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대대적인 수색이 펼쳐졌고 인근 지역에 숨어 있던 기독교인 608명이 체포돼 오무라 감옥을 비롯한 5곳에 분산 수감된다. 감옥에서 숨진 78명을 제외하고, 99명이 배교를, 20명은 종신형, 나머지 411명은 끝까지 자신의 신앙을 지키다 참수됐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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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7년 이들 중 오무라 감옥에 수감 중이던 131명이 호코바루 처형장에서 참수된다. 도쿠가와 막부는 이들 크리스천들이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3일 만에 시신을 파내 목과 몸을 따로 떼어 내 서로 다른 곳에 매장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기념하는 몸체무덤과 머리무덤 기념비가 150미터 간격을 두고 각각 세워져 있다. 시마바라 난 이후 일본 내에서 이렇게 많은 기독교인이 순교당한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운젠지옥 십자가 순교 기념비

1612년 시마바라의 영주 마츠쿠라 시게마사가 가혹한 기독교 박해 정책을 실시하면서 1627년부터 1631년까지 펄펄 끓는 열탕인 ''''운젠지옥''''에서 크리스천들에게 고문과 박해를 가하며 배교를 강요했다. 10일에서 많게는 1개월간에 걸쳐 열탕에 담갔다 꺼내는 고통을 당하다가 16명의 크리스천들이 순교했다.

일본 나가사키에 최초로 그리스도교의 씨를 뿌린 사람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1550년 8월 경이다. 1570년 나가사키 항이 무역항으로 개항한 이후 1601년부터 1614년까지 교회의 황금시대를 맞으며 선교가 꽃을 피웠다. 이후 1612년 기독교 금지령이 내려지고 1637년부터 숨어서 신앙을 지키려는 잠복 크리스천들은 1870년대 초반까지 탄압 속에 지내게 된다.

현재 일본의 복음화율은 1%도 안될 정도로 매우 낮은 편이지만 이 같은 순교자들의 피와 정신은 오늘날 일본 선교의 가능성을 엿보이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