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새벽 98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최창근 장로는 평생을 故 한경직 목사의 사역과 함께 한 재정적 조력자요 ''''수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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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1월 15일 평북 신의주에서 태어난 고인이 한경직 목사를 처음 만난 건 열 살 무렵이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움을 모르고 지내던 고인은 부친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보통학교(만주 안동현)를 졸업한 뒤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한 가게의 점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이것이 기초가 돼 후에 큰 사업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점원으로 일하면서 출석했던 교회가 신의주 제이교회였는데 이 때 담임목사가 한경직 목사였다.
해방 후 서울로 월남한 최창근 장로는 한경직 목사가 서울에서 영락교회를 세웠다는 말을 듣고 영락교회에 출석하면서부터 한 목사의 동반자요 후원자로서 장학사업과 학원선교, 나눔 활동 등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한 목사의 선교사업을 돕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았던 최 장로는 한 목사가 선교 사업을 계획할 때면 늘 재정적인 문제와 행정 등을 상의하면서 조력자의 삶을 살았다.
첫 사업은 전쟁 고아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1954년 한경직 목사가 전쟁 고아들과 미망인들을 ''''보린원''''과 ''''모자원''''을 설립할 때 고인은 보린원 이사를 맡아 설립에 참여했다.
특히 한 목사의 영향으로 교육 분야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고인은 영락교회가 설립한 영락 중·고등학교의 이사로 참여했고 북한에 있던 숭의여학교와 보성여학교 재건에 적극 참여하면서 후에 보성학원 이사장직(1977-2008년)을 맡게 됐다.
최 장로는 2003년 CBS-TV와의 특집대담에서 ''''한경직 목사님이 늘 교육 얘기를 하셨어요. 우리 민족을 학교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쳐야 대한민국이 바로 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이제부터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학교를 세워 기독교 교육 시켜야 합니다''''라고 간증했다.
삼원상사(1938년)와 대륙통산(1953년) 등 견직물 도매업과 ㈜동영(1971년)과 밀알(1977년) 등을 운영하며 큰 돈을 벌었던 그는 평소 ''''하나님께서 내게 사업체를 계속 맡겨주신 것은 기독교적 사업경영으로 성공을 거두어 하나님의 사업에 많이 사용하라는 뜻''''이라면서 선교와 교육사업에 수천억원이 넘는 돈을 쾌척했다.
1956년 경기도 남양주에 33만여 제곱미터(약 십만여평)의 땅을 기증해 영락공원 묘원을 조성했고, 1976년엔 4억원 정도의 토지를 매각해 영락고등학교 건축에 기여했다.
또 보성여고 강당을 건축할 때 2억원,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가 설립될 당시 26만 제곱미터(약 8만평) 가량의 부지를 후원하는 등 기독교 교육사업에 큰 힘을 보탰다.
이러한 헌신을 인정받아 그는 1979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을 받았다. 1960년대에는 기드온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1966년 국제기드온협회 전국회장을 맡아 민족 복음화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발전한 1970년대엔 기독실업인회를 만드는 일에 적극 나서 1977년 세계기독실업인대회를 유치했고 이를 계기로 부활절연합예배를 초교파로 드리는 기초를 마련하기도 했다.
군복음화 후원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 한 목사와 함께 72년 창립모임을 가진 뒤 1976년 군복음화 후원회를 조직해 전국의 군부대 교회를 후원하고 지원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1984년 ''''우리의 재산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사회를 위한 선한 사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시작한 ''''유산남기지 않기 운동''''은 사회적으로 큰 호응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다.
실제로 1997년 외환위기로 회사가 부도가 난 뒤 자녀에게 재산을 남겨주지 못하게 됐고 평생 일군 회사를 잃었는데도 실망하지 않아 지인들은 그를 구약성경의 ''''욥''''에 비유하며 고난받는 신앙인의 표상으로 여겼다.
이밖에도 고인은 자신의 부지를 기부해 CBS 기독교방송이 목동사옥을 신축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한경직목사 기념사업회''(1981-2013)와 ''세진회 이사장''(1990-2010)과 ''''월드비전 이사''''(1989-2004), ''''한국YMCA 부이사장''(1987), 북한동포돕기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위원회 위원장(1997년) 등 수많은 기관과 단체들을 창립하거나 후원해 오면서 한국 기독교 발전에 크게 공헌해 왔다.
8일 빈소를 찾은 김경래 장로(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기독교 선교 127년의 역사 가운데 가장 헌신적으로 일해 온 장로 중의 장로"라면서 "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이 때에 귀감이 될 평신도를 잃었다"고 안타까와했다.
영락교회 한진유 장로(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이사)는 "최창근 장로는 수백억원을 들여 수많은 기관을 위해 후원하고 봉사했지만 자신의 재산은 거의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신앙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후대 신앙인들에게 큰 귀감이 되는 어른"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10일 오전 9시 영락교회 본당에서 발인예배 후 자신이 기증한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능리 소재 영락동산에 안장된다.